원불교 선교사에서 두부 교회, 콩나물 교회 선교까지
[뉴라이프교회] 카자흐스탄 이민교 선교사 초청 집회

  • ▲이민교 선교사는 선교 보고 전 “선교하다 죽을 각오를 하는 분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도전을 던졌다.


   그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선교 보고를 하기 전, “선교사는 선교하다가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후 “선교지에서, 삶에서, 일터에서 예수를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거실 분들은 앞으로 나와 앉으라”고 했다. 23일부터 25일까지 뉴라이프교회에서 열린 이민교 선교사(카자흐스탄) 초청 선교부흥회 중 마지막 저녁 집회에서였다.

   1981년 그는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소록도에 제 발로 찾아 들어갔다. 자신이 믿는 원불교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더 쉽게 말하면, 그는 원불교 선교사였다. 이곳에서 그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의 7년간의 기도 덕에 극적으로 회심하고 기독교인이 됐다. 소록도에서 이 선교사를 도와 준 목사가 침례교인이었기에 그는 대전 침신대로 진학해 침례교 목회자가 됐다. “선교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던 그는 약사 아내와 함께 약국을 처분한 후, “이 돈이 떨어질 때까지만 선교한다”는 다짐으로 선교지를 찾기 시작했다.

▲이민교 선교사
   마침 1991년 구 소련이 붕괴됐고 그는 그곳으로 나갔다. 구 소련에서 만난 존재는 바로 고려인 결핵 환자. 이 선교사는 그에게 복음과 약을 주며 동고동락했다. 그리고 그의 회복을 위해 그를 고향까지 데려다 주며 도착한 곳이 바로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마치 우연처럼 이곳에서 그는 농아 목회를 시작했다. 소외된 자 중에 소외된 자들이 농아들이었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의 도전을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목회 4년만에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말을 잘 못하고 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농아인 그런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할 뿐 아니라 치유의 은사까지 받아, 농아들이 손을 얹는 사람들마다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 넘는다”고 간증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농아교회 앞마당의 복숭아 나무 아래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우즈베키스탄을 사랑했다. 그러나 9.11 테러 후 이슬람권에서 선교사들이 강제적으로 추방당하며 그도 추방당했다. 모든 것을 헌신한 우즈베키스탄에서 “쫓겨난” 그는 상심과 낙담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이제 이 고생 안하고 좀 편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그를 붙든 것은 하나님의 선교 비전. 그는 이번에는 카자흐스탄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선교에 눈을 떴다. 바로 비즈니스 선교였다. 이 선교사는 “이슬람은 개인과 모스크, 일터라는 3개의 시스템이 함께 돌아간다. 그에 비해 기독교는 개인과 교회 뿐이다. 일터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을 전도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개종할 경우, 종교 공동체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일할 곳마저 빼앗겨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선교하려면 교회가 반드시 일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마다 개종한 무슬림들이 취업할 수 있는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정확히 말하면 교회 자체가 경제 공동체였다. 그는 일명 두부교회, 뻥튀기교회, 콩나물교회 등 선교를 위한 교회를 만들어 갔고 이것을 통해 선교하고 있다.

   그는 “여러분의 물질과 시간,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고 선교에 드리라”고 강조하며 “꼭 선교지에 가지 못하더라도 삶의 자리에서, 일터에서 예수를 전하다 죽을 각오를 하는 선교사들이 되라”고 도전했다.

김준형 기자 [4-24-2010]